마광수의 뇌구조
노골적인 마광수식 철학을 만나다! 마교수의 위험한 철학수업『마광수의 뇌구조』. 마광수식 생각의 모음을 담은 책으로 총 8장으로 구성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명예, 돈, 권력 등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것들은 결국 성욕과 식욕의 원활한 충족을 위한 준비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이 세상 돌아가는 법칙을 그만의 직설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개인이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성욕구를 표출할 수 있도록 사회제도 및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거나, 사랑을 성욕의 다른 이름으로 보며 궁극적 성적 만족은 종족보존의 욕구를 극복할 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성에 대한 노골적인 마광수식 철학을 만나볼 수 있다.
마광수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나와 「윤동주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 24세에 대학강의를 시작으로 28세에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지낸 후 1984년부터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92년 10월 『즐거운 사라』필화사건으로 전격 구속되어 두 달 동안 수감생활을 한 후 95년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연세대에서 해직되고 98년 복직됐으나 2000년 재임용탈락의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연세대학교 교수로 있다. 1977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후 그는 시, 소설, 에세이, 평론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35권이 넘는 저서를 쏟아냈다. 89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에세이로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꼬리표가 채 식기도 전에 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구속당한다. 그가 오랫동안 성을 주제로 한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아니다. 끊임없는 사랑에 대한 탐구에 있다. 그는 성은 “그것이 어떤 양상이든, 다시 말해서 아름답든 추하든 건강하든 퇴행적이든, 우리의 실존 그 자체일 뿐 도덕적 당위와는 거리가 먼 문제”라고 당부한다. 그는 특히 ‘성은 아름답고 건강하게 그려져야 한다’는 말처럼 허위적이고 이중적 위선으로 가득찬 말은 없다고 주장한다. 정치나 사회 등 다른 것은 다 리얼하게 해부해서 표현해도 되지만, 성만은 예외라는 식의 사고방식이야말로 반리얼리즘 문학관이라는 것이다. 특히 “성에 대한 담론은 반드시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에만 한정돼야 한다는 단서 또한 궁색하기 그지없는 결벽증적 성알레르기 증세나 성적 죄의식의 발로”라는 것이다. 그는 시나 소설에서만큼은 에세이나 평론과는 구성이나 문체상 거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양주의나 교훈주의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창작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첫 단편소설집인 『발랄한 라라』는 30편의 단편으로 구성돼 있다. 그의 말처럼 단편의 묘미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명제에서 나오듯이 원고량이 20매에서 100매 분량의 다양한 글이 실려 있다. 특히 단편 <개미>의 경우는 극의 반전이 재미있다. 톡 쏘는 듯한 맛을 연출하는 놀람끝남법이 아주 인상적이다. 서민의 단상을 엿볼 수 있는 <돼지꿈>과 문학적인 묘사가 잘 드러난 <별아, 내 가슴에>에서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마광수 소설의 또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Ⅰ. 마광수의 세계관_009 이 세상은 섹스로 이루어져 있다 “섹스 없이는 먹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모두 동식물이 번식을 위해 섹스를 하여 생산해놓은 씨앗, 열매, 고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식욕 이전에 성욕이 고 성에 고프지 않을 때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Ⅱ. 마광수의 여성관_023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저는 손톱이 무지 긴 여자한테 맥을 못 춥니다.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화장과 현란한 피 어싱, 염색, 뾰족 구두 등…….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속’이 야해야 한다는 것이죠. 또 잘 핥고 잘 빨아야 해요.” Ⅲ. 마광수의 섹스관_039 섹스는 재밌는 놀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섹스 왜 했냐’ 물으면 ‘허무해서 그랬다’는 식으로 쓰는 수법. 대 표적으로 무라카미 류가 그렇지. 나는 그게 아니거든. 성은 무조건 즐겁다는 거야. 그래서 명랑하게 나가잖아. 『돌아온 사라』도 얼마나 명랑해. 사회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에 할 수 없 이 섹스로 도피한다는 건 핑계야. 면죄부를 받는 수단이지. 신나게 야하게 묘사한 뒤에 ‘아, 허무하다’ 이거면 돼? 섹스는 만날 소외되어 있을 때만 하나? 즐거울 때도 하지. 나는 다만 섹스는 즐겁다 이거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아?” Ⅳ. 마광수의 문학관_057 한국은 문화적으로 촌스럽다 “나한테 문학은 그냥 카타르시스야. 나도 좋고 독자도 좋자 이거지. 나도 대리배설하고 너희도 대리배설해라 이거야. 교훈? 그런 거 없어. 문학은 오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인 문학을 공부하다 보니까, 소설이고 뭐고 사랑 빼면 시체야. 근데 사랑이 뭐야, 따지고 보면 성욕이야.” Ⅴ. 마광수의 추억관_081 내가 흡입한 여자들 “『즐거운 사라』에 나오는 국문과 교수 ‘한지섭(사라 애인)’은 저의 분신이죠. 실제로 홍대 교수 시절, 사라 같은 미술대 여학생과 진한 연애를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자들과 연 애를 가장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 이후론 사건 후유증 때문에 쭉 굶 었지요.” Ⅵ. 마광수의 철학관_101 권태는 변태를 낳고 변태는 창조를 낳는다 “쾌락은 어떤 쾌락이든지 질리게 되어 있어. 그러나! 섹스만은 안 질린다. 인생도 뭐든 질 려. 심지어 밥도 먹다 보면 질려. 하지만 섹스 자체는 절대 안 질려. 물론 한 여자 한 남자하 고만 하면 질리겠지. 당연한 거 아냐? 사랑을 해도 권태가 있잖아. 권태와 변태. 권태로워 지면 변태로워지고, 변태로워지면 창조가 나온다. 그게 내 명제야.” Ⅶ. 마광수의 미술관_165 예술은 ‘위압적威壓的 양심’과 ‘격노激怒하는 본능’을 비폭력적으로 중재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손으로 비비고 문지르며 나이프로 긁어댈 수도 있는 캔버스 작업은 내게 진짜로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해주었다. 그림이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 우선 나 스스로 카타르시스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붓을 휘둘러대었는데, 그러다보니 캔버스 작업은 대부분 즉흥성에 의존한 것들이 많다.” Ⅷ. 에필로그_187 다 나처럼 되라는 것이 아니다. 나 같은 사람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