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일상적이지만 절대적인 과학철학지식 50 - 오컴의 면도날에서 불확정성까지 과학개념에 관한 모든 것

일상적이지만 절대적인 과학철학지식 50 - 오컴의 면도날에서 불확정성까지 과학개념에 관한 모든 것

저자
개러스 사우스웰
출판사
반니
출판일
2016-10-24
등록일
2017-10-13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1KB
공급사
우리전자책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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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플라톤부터 토머스 쿤까지, 연역법과 귀납법에서 인공지능까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식의 최전선, 과학철학

▼ 철학과 과학의 피할 수 없는 동거
흔히 철학은 골방에 틀어박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머릿속으로만 상상하고, 과학은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없는 것은 가차 없이 폐기하는 냉정한 학문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철학과 과학은 극과 극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최초의 철학자이자 최초의 과학자로 여겨지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 철학과 과학은 한 몸이었다.
‘자연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와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다가 근대에 들어 독립적 분야를 확립한 과학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며 인간의 삶을 놀라울 정도로 뒤바꿔놓았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달에 갈 수 있게 되었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불치병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기계를 만들어내는 단계에 와 있다. 과학기술로 못할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성공 때문에, 그리고 과학이 차지하게 된 지배력 때문에 더욱더 철학이 필요해졌다. 과학자들의 주장은 언제나 옳을까? 과학은 우리에게 삶의 모든 면을 거짓 없이 알려줄까? 과학적 발견에 어떤 윤리적인 걸림돌이 있을까? 이런 질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면 이미 과학철학에 발을 담근 것이다.
《일상적이지만 절대적인 과학철학지식 50》은 과학의 발전을 이끌고 빚어낸 핵심 개념과 이론들을 이해하기 쉽고 간결한 용어로써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아직까지 해소되지 않은 논쟁들을 살펴본다. 그렇지만 논쟁의 어느 한쪽 편을 들기보다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독자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 이 책이 가진 덕목 중 하나이고,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부터 파이어아벤트, 칼 포퍼, 하이데거 등 현대 철학자에 이르는 철학적 질문들이 자연과 과학에 귀중한 통찰을 제공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두 번째 덕목이다.

▼ 플라톤으로부터 시작된 과학철학의 발전
초기 자연철학자들은 체계적인 관찰이나 가설보다는 논리와 논증에 중점을 두었다. 이런 배경에서 탈레스를 비롯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원을 물이나 공기, 불 등으로 추정하기도 했고, 초기 형태의 원자론을 제창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관점으로는 터무니없고 허술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당시의 자연탐구 역시 세계는 질서 정연하다는 믿음이나 논리와 논거를 중시하는 등 과학적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플라톤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현상과 실재, 즉 지각된 것과 진정한 실체에 대한 구분이 시작되었다. 이에 따른 두 가지 결과가 이후 과학철학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첫째는 이것이 꼭 실험하지 않아도 논리와 논증 또는 직관으로 참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합리주의의 한 형태라는 점이다. 이는 과학적 탐구 방법이 합리주의와는 반대되는 철학 사조인, 실험과 감각지각을 중시하는 경험주의와 점점 더 긴밀히 결합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둘째는 플라톤의 구분이 보편적인 경험과 동떨어져 있는 순수한 이데아가 있다고 상정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런 이데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합당한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 오히려 후대의 경험주의자들처럼 경험을 통해 관념을 얻고 이 관념을 통해 세계를 이해해나간다고 가정하는 편이 훨씬 타당하지 않을까? 이처럼 플라톤의 구분은 지금까지도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유물론과 관념론, 실재론과 반실재론 등 실재의 본질과 과학의 목적을 둘러싼 철학적·과학적 대립의 뿌리가 되고 있다.

▼ 과학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지식에 대한 탐구에 도덕적 개념을 적용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다 보니 과학의 역할을 두고 특정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나 도구, 개념이 있는지 의문을 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 걱정한다는 건 조금 이상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과학은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다른 노력 활동과 마찬가지로 세계와 다양한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다.
과학계에서 가장 중대한 윤리적 문제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유전자변형작물(GMO) 문제다. 작물은 질병과 해충에 취약하고, 살충제는 환경에 해롭다. 그러니 작물을 유전적으로 조작해서 해충이나 질병에 면역력을 갖추도록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더 나아가 열매의 싱싱함이 더 오래가게끔 만들면 어떨까? 하지만 유전자 변형 기술은 굉장히 폭넓고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만큼 심각한 위험성도 존재한다. 식물의 DNA를 조작하면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만들 수도 있지만 생태계를 교란할 수도 있다. 이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예측하기란 굉장히 어렵다. 다시 말해 GMO의 이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지만, 알 수 없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 성과가 초래할 도덕적·사회적 의미까지 고려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만들어진 원자폭탄은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 없듯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사악한 것들이 담긴 상자를 호기심으로 한번 열어버리면 다시는 닫을 수가 없다는 점을 과학자는 항상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과학적 성취를 이루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유럽에서는 인체 해부를 금기시했고, 지금도 과학 연구를 위해 장기나 시신을 기증받을 때 예의를 갖추지만, 동물이나 수정란, 태아 등 ‘비인간’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접근법은 인간만이 도덕적 권리를 지닌다는 전제에 따른 것이지만, 이들에 대해 명시된 도덕적 의무가 없다 해도 우리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 수정란이나 태아는 잠재적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있으며, 우리 인간이 자연 그 일부임을 감안할 때 동물의 고통과 괴로움을 외면하거나 자연을 냉혹하게 착취하는 것은 우리 자신과 생명 그 자체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주 간단한 예시만으로도 과학은 전혀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 과학과 철학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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