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좋은 구름 : 실천시선 216

좋은 구름 : 실천시선 216

저자
박서영
출판사
실천문학사
출판일
2014-08-19
등록일
2015-01-29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257 Bytes
공급사
우리전자책
지원기기
PC PHONE TABLET 프로그램 수동설치 뷰어프로그램 설치 안내
현황
  • 보유 2
  • 대출 0
  • 예약 0

책소개

사랑의 통증과 슬픔의 깊이를 노래하는 ‘심장의 시인’

1995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박서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발원지와 소실점을 찾아 그 속에 내재된 고통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시선은 “울음의 엔진”(「맨발)」)을 찾아 “흩어진 영혼을 자루”(「업어준다는 것」)에 담고, “심장의 마지막 직업”(「희귀한 곤충」)에 이른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한 방울의 눈물이 평생의 고백”(「흑백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지상의 눈꺼풀 속으로 침몰해버린 사랑(「목」)”이 기나긴 생애를 증명해주는 단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음을 발견한다.

섬세한 감각으로 포착해낸 순간의 시학

박서영 시인의 시에는 고통과 애환, 허무와 의욕과 욕망이 모순되게도 한결같이 뒤섞여 있다. 시인은 자신의 아픔과 절망을 버무려 삶의 고통과 허무, 욕망을 그려낸다. 그녀의 감성은 바스락거리는 구름의 소리를 듣고, 키 낮은 꽃들의 아픔을 공감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그녀와 같은 고통을 겪는, 또는 더한 세상의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녹아든다. 그녀의 시는 겉으로 조용하지만, 그 내부는 뜨겁고 치열하게 녹아내리고 있다.

내 몸의 일부는 깨진 파편 속에 꽂혀 있다
어딘가에 버려진 애착 같은 것

오늘 가만히 몸을 들여다보니
그때의 파편들이 돌아와 체온을 높이고 있다

물과 불의 흐느낌처럼 식었다가 타오르는 심장
굳어버리는 순간에 따라 피우는 꽃이 다르다

_ 시 「던졌던 순간」 부분

박서영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인간의 광활한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찰나들을 포착해 그 안에 내재한 인간의 삶, 인간의 사랑의 의미와 고통을 들여다본다. 시인이 포착해낸 그 찰나들은 한 폭의 “수채(水彩)처럼 번지고 뒤섞이면서 사물들의 발원지와 소실점을 선연하게 담아”(유성호 문학평론가)낸다.

좋은 구름이 있다고 했다. 사진작가들은 그런 걸 찾아 떠난다고 했다. 빈 들에 나가 여자를 불렀다. 사랑스러운 여자는 화장하고 옷 차려입느라 늦게 나갔다. 사진작가는 버럭버럭 화를 냈다. 좋은 구름이 떠나버려서, 좋은 구름이 빈 들과 여자를 남겨두고 떠나버려서.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고 여자는 오래 빈 들에 서서 보았다. 사자와 치타. 새와 꽃. 눈물과 얼룩. 구름 속에서 자꾸 구름 아닌 것들이 쏟아졌다. 남자는 화가 나서 떠나갔다. 한 프레임 속에 좋은 구름과 빈 들과 여자를 넣지 못해서.
_ 시 「좋은 구름」 부분

시에 등장하는 사진작가는 “좋은 구름”을 포착하기 위해 욕망한다. 그는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에 쫓겨 사랑스러운 여자를 빈 들에 홀로 쓸쓸히 남겨둔다. 그는 다시 좋은 노을이 있는 다리 위에 서서 여자를 부르고, 여자는 노을이 떠나버릴까 봐 화장도 하지 않고 서둘러 뛰쳐나간다. 하지만 이번에도 사진작가는 화를 내며 좋은 노을이 떠나버려서, 좋은 노을이 강물과 여자를 남겨두고 떠나버려서, 그녀를 떠난다.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것을 삶이라 부르고 인생이라 일컫는다. 강이 바다에 닿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굴곡을 지나듯, 사람들은 자신이 가 닿고자 하는 곳을 가슴속에 품고 세파를 견뎌낸다. 그런데, 우리가 걷는 그 길 끝에도 바다가 있을까. 우리는 끝내 붙잡을 수 없는 ‘찰나’를 위해 평생 쫓기듯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입술 속에 숨어 있는 사랑’(「은신처」)을 모르고, “비애를 삼킨 우리의 붉은 입술”(「배꼽의 위치」)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발원지와 소실점에 가 닿은 시어들

박서영 시인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은 시인의 무거운 눈물과 유사하게, 또는 더 무거운 슬픔으로써 세상의 깊숙한 틈바구니에 고여 있는 주변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비루한 일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인다. 시인은 그들의 모습을 섬세한 감성으로 스케치하며 그것을 높고 날카로운 고통의 목소리가 아닌, 마음 저 안쪽에 있는 낮은 울림으로 공감하고 끌어낸다.

저수지에 빠졌던 검은 염소를 업고
노파가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등이 흠뻑 젖어들고 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자장가까지 흥얼거렸다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서로를 찌르지 않고 받아준다는 것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_ 시 「업어준다는 것」 부분

시에서 노파는 물에 빠진 염소를 업고 긴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시인은 그 풍경을 보고 “한없이 가벼워진 몸이 젖어 더욱 무거워진 몸을 업어주고 있다”고 말한다. 말할 수 없는 대상에게 체온을 나누어주는 것, 시인은 염소를 업은 노파가 걷는 그 길이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시인이 관찰하고 포착한 세계의 얼굴은 찰나적인 분할되어 있지만, 그 안에 품은 몸은 유순한 강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세계다. 그 세계를 시인은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으로 심장의 타오름을, 최초의 떨림을, 사랑의 통증과 슬픔의 깊이”(유성호 문학평론가)를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그 노래는 끝내 이 세상의 발원지와 소실점에 가 닿을 것이다.

QUICKSERVIC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