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
그동안 여행했던 도시에 대해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그 도시에서 알았고 만났던 남자들이 생각나.”
서른번째 여름, 그녀는 여행을 떠났다. ‘나의 문제’는 뭘까.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삼십대 초반이 된 그녀는 이제 많은 것을 결정해야 했다.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글을 썼다. 자신이 떠난 13개국의 여행지과 13명의 남자들의 이야기를. 책에는 작가 김얀이 여행지에서 만난 도시와 남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방콕에서 온몸에 문신을 그린 남자를 만난 일, 몽마르트르에서 만나 서울까지 이어졌던 인연, 누구보다 잘 아는 사이였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알 수 없었던 의문의 남자 그리고 지금 사랑하고 있는 ‘너’까지.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좋아하며 침대 위에서 만났던 남자들의 이야기를 써나갔다.
책에서 그녀는 수많은 남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마지막에 “이야기 어딘가에 낯선 곳을 헤매고 있는 상처투성이의 내가 보였다”고 말한다. 이 글을 쓰며 심연의 어딘가를 서성이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외면해왔던 자신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낯선 여행지의 낯선 침대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한번은 외로웠던 경험이 있었던 독자들 또한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982년, 제가 태어난 날 우주의 모습을 상상해봤습니다. 제가 별들과 함께 떠다니더군요. 어느 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간절히 글을 쓰고 싶었던 저는 그 다짐과 함께 그날의 우주를 왼쪽 손목에 새겨 넣었지요. 경민(ㄱㅕㅇㅁㅣㄴ)이라 새긴 손목의 문신을 거꾸로 본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김얀? 저를 김얀(ㄱㅣㅁㅇㅑㄴ)으로 불러준 그들에게 이제, 조심스레 김얀이라는 작은 우주를 열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