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 - 혁명의 딜레마, 고객이 된 시민, 지식인의 브랜드화
문화대혁명을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본 중국 철학자와
체 게바라와 함께 혁명을 이끈 프랑스 사상가의
근대적 사유의 한계와 동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지적 대화
◆ 이 책은…
“혁명의 상상임신은 끝났다!”
혁명의 시대가 끝나고 민주주의조차 위기에 처한 지금,
왕년의 혁명가와 동양의 철학자가 만났다
체 게바라와 함께 혁명을 이끈 프랑스 사상가 레지 드브레가 문화대혁명을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본 중국의 철학자 자오팅양을 만났다. 끝없이 변화하며 더 세련된 방식으로 우리를 길들이는 권력과 체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서로 다른 이력만큼이나 서양과 동양이라는 이질적인 환경에 놓여 있는 두 사람은 시간과 공간, 주제에 제약받지 않으며 12편의 편지를 나눴다. 이들은 학술적 은어나 논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민감한 주제를 회피하지도 않으며, 여러 가지 단순화된 구호 뒤로 숨어들지도 않는다.
근대적 혁명의 한계에서 시작한 이 서신 토론은 정치, 종교, 역사, 철학을 넘나들며 자본에 잠식당한 현실을 폭로한다. 혁명에 투신했던 드브레는 거대담론이 아니라 미세한 현실에 주목하는 매체학 연구를 통해 작은 변화에 주목하고, 스스로를 ‘탁상공론’의 철학자라고 여기는 자오팅양은 복수의 진리를 인정하고 개인 중심의 이성에서 관계 중심의 이성으로 초점을 이동한다.
서로 다른 언어와 방법론이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것은 근대적 사유방식을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다. 차이와 조화, 관계와 우정에 대한 통찰은 이들이 나눈 지적 대화의 중요한 주제인 동시에 이 서신 토론이 맺은 소중한 결실이다.
자본과 기술에 감정과 정신이 잠식당한 상실의 시대,
근대를 넘어선 ‘새로운 혁명을’ 말하다
“오늘날 우리는 사실상 ‘자유’와 ‘자주’ 개념과 결별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본과 기술이 공모해서 인간의 생활을 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본과 기술에 지배당하며 사는 동안 인간의 감정과 정신은 쇠약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편안함과 편리함을 누리기 위해 욕심을 부립니다.”
_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국의 독자들에게 쓴 자오팅양의 이 서문은 우리가 놓인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한다. 한국 역시 이러한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인식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한 간접적 인식은 우리의 감정을 무디게 만들고, 주류의 담론에 의해 걸러진 사실만이 우리의 인식 속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이렇게 감정, 정신, 이상, 자유를 모두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자오팅양과 드브레가 토론의 소재로 삼은 이상, 이성, 진리, 조화, 보편 등은 모두 근대에서 비롯된 개념들이다. 자본과 기술, 권력이 끊임없이 진화할 때 우리의 대응이 근대적 방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서신 토론의 결실은 그 근대적 개념들의 사이와 그 너머의 사유를 열어젖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두 사상가의 토론을 따라가며 ‘새로운 혁명’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다.
◆ 도서 소개
50주기를 맞는 중국의 문화대혁명,
떨쳐낼 수 없는 마오의 그림자
중국은 2016년 5월 16일로 문화대혁명 50주기를 맞는다. 1966년 5월 16일 중국 공산당 정치국회의에서 낭독된 ‘5·16 통지’로 발발한 문혁은 오늘날 중국에서 금기시되고 있음에도 아직 그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본의 침투가 심화됨에 따른 빈부격차와 마오를 부정할 때 빠질 수밖에 없는 체제의 모순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통과 문화를 파괴시키고 발전마저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차치하고라도 문혁이 정치적 정확성을 내세운 근대적 혁명임은 자명하다.
이 책에서 토론을 풀어가는 동서양 두 사상가는 각기 다른 근대적 혁명의 격정을 보낸 자리에 서 있다. 자오팅양에 따르면 근대 혁명은 이상 실현을 위한 행동으로, 이미 상정해놓은 ‘정확한’ 세계를 구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굶주리지 않고 생활의 편안함을 느끼고자 할 뿐이다. 이것은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인성의 실망스러운 현실’이다. 이성이 견인하는 근대 혁명이 다시 민족적 전통으로 회귀하고 반혁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오팅양이 이렇게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혁명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 드브레는 “혁명의 상상임신은 끝났다”고 선언하며 혁명의 자리를 민주주의가 대체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혁명과 달리 민주주의는 그 의미가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무엇보다 이 틈을 파고드는 자본과 권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의 변형,
퍼블리크라시(publicracy)와 미디어크라시(mediocracy)
오늘날의 세계는 바로 이렇게 허점을 가진 민주주의를 마치 ‘가치’처럼 여기는 함정에 빠져 있다. 현대의 많은 국가들은 서구에서 수출한 정치 제도인 민주주의를 그들의 체제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담론을 이끄는 미디어는 권력과 자본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지식인은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를 브랜드화하지 않으면 공론장에 입장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을 드브레는 지적한다.
또한 그에 따르면 더 세련된 방식으로 시민들을 길들이는 권력에 의해 시민은 ‘고객’이 되어버리고 체제에 순응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 이러한 드브레의 비판에 자오팅양은 민주주의가 가치가 아니라 공공 선택의 수단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좋은 공공 선택을 낳을 수도, 나쁜 공공 선택을 낳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라는 수단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드브레는 나아가 중국이 문혁을 금기시 하고 개방을 외치더라도, 민주주의와 함께 체제에 스며들 자본주의를 경계하라고 주문한다. 아무런 이상을 추구하지 않는 듯 보이는 자본주의는 권력을 은폐시키고 우리가 스스로를 노예화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에 자오팅양은 기존의 민주주의가 퍼블리크라시(publicracy)로 변형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즉 새로운 권력에서 기인한 지배적인 전체 의지가 사회를 이끌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드브레는 실천적 지식인이 공인이 되어 공적 네트워크에 진입해야 하는 상황을 미디어크라시(mediocracy)라는 용어로 진단한다.
작은 현실에 주목하는 드브레의 매체학,
보편을 재정의하는 자오팅양의 관계이성과 복수의 진리
드브레가 매체학(mediology) 연구에 몰두하는 이유는 그의 정치적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 혁명의 격정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는 거대 담론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피로감과 이상 추구의 한계를 절감했다. 따라서 그는 물질의 변화와 그 매개물 사이의 실천적 조작을 연구하는 매체학 연구를 통해 개념이 선행하는 근대적 사유방식을 뛰어넘고자 한다. 이러한 사상의 전환은 그가 현실에 매몰된 학자도 아니고 더 이상 낭만에 빠진 혁명가도 아니기에 가능했다.
스스로를 현실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라고 말하는 자오팅양은 근대 철학의 원칙인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를 ‘파키오(facio)’로 대체한다. ‘나는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원칙을 철학의 토대로 삼는 그는 유물론과 관념론 중 어느 쪽에도 매몰되지 않고자 한다. 두 이론 모두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존재론과 창조론을 하나로 합쳐 철학의 정초 문제가 나타나는 지점을 밝힐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오팅양은 신의 창세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창조한 역사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며 근대의 사유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한편 드브레는 보편주의가 다양성을 해치고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다. 또한 누구라도 자신이 속해있는 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즉 민족성을 떨쳐내기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체성(그것이 비록 상상과 거짓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 자오팅양은 보편주의라는 것이 근대적 발상인 ‘개인의 이성’을 토대로 하지 않고, 특수한 관계에서 보편적으로 유효한 ‘관계이성’을 토대로 한다면 다양성을 해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각각의 정치제도 위에 그려진 판에 박힌 이미지만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덕분에 저는 가능한 한 제가 사는 곳에서 겸허하게 파리의 베이징인이 되었습니다.”
드브레는 자오팅양과 철학적 토대를 완전히 공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토론을 진행하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한다. 바로 오늘날의 전 지구화 시대에 세계는 미국의 자본주의와 패권의 영향 아래에 있지만, 정신적으로 공생성과 혼합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서양은 점차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파악하려 한다는 사실 역시 드브레에게는 중요했다. 동양과 서양의 교훈이 상호 흡수되어 교차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자오팅양 역시 중국의 복잡한 상황이 서양이 이미 중국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영역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고대 중국이 인도에서 불교를 수용했듯 오늘날에는 서구의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중국의 한 속성이 된 서양을 해석하고 조화시키는 것이 중국이 놓인 과제라고 말한다. 또한 이런 방식이 중국의 존재방식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세계가 중국을 닮아간다는 드브레의 말에 대응한다.
이렇게 서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독자들은 공존과 조화라는 이 토론의 주요한 주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드브레의 편지에 담긴 이 말은 동양의 철학자와 나눈 지적 대화가 서로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는지 보여준다.
“정의를 찾는 시간에 우리는 동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찾을 때 친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언컨대 선생님은 제 친구입니다.”
언론 서평
연합뉴스 2016. 5. 18일자 기사 보러가기
한겨레 2016. 5. 19일자 기사 보러가기
경향신문 2016. 5. 20일자 기사 보러가기
한국일보 2016. 5. 21일자 기사 보러가기
머니투데이 2016. 5. 21일자 기사 보러가기
조선일보 2016. 5. 21일자 기사 보러가기
매일경제 2016. 5. 20일자 기사 보러가기
청년 시절 체 게바라와 함께 라틴아메리카 혁명에 뛰어든 프랑스의 작가이자 매체학자다.
1940년 파리 출생으로,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철학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1960년대에 카스트로의 초청을 받아 쿠바로 가서 혁명에 참여한 데 이어 체 게바라와 함께 볼리비아에서 혁명 투쟁을 이끌었다. 1985년부터 1993년까지 미테랑 대통령 자문위원을 맡았고, 이후 1994년 소르본대학에서 〈매개론 강의〉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학술과 문화 분야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프랑스의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페미나상(Le Prix Femina)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 《이미지의 삶과 죽음》(글항아리, 2011), 《전쟁이 끝난 후》(공저, 이후, 2000), 《매개론 선언》(갈리마르, 1994), 《유혹자 국가》(1993), 《일반 매개론 강의》(갈리마르 사상총서, 1991), 《예찬》(갈리마르, 1986), 《정치이성 비판》(갈리마르, 1981) 등이 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첫 번째 서문
두 번째 서문
첫 번째 편지 - 반혁명을 초래한 혁명의 두 얼굴
두 번째 편지 - 혁명을 대체한 키워드, 민주주의
세 번째 편지 - 새로운 지평을 여는 관계이성과 매체학
네 번째 편지 - 진실과 거짓, 상상이 빚어내는 세계
다섯 번째 편지 - 정치적 정확성에서 교차 모방까지
여섯 번째 편지 - 권력 구조의 변동과 새로운 체제에 대하여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