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다시 김광석이다. 2013년 12월 16일부터 김준수(JYJ) 주연, 장진 연출로 ‘故 김광석 탄생 50주년 창작 뮤지컬 〈디셈버 : 끝나지 않은 노래〉’가 무대에 오른다. 올해에만 김광석을 주제로 한 뮤지컬로 세 번째다. 〈히든싱어〉 같은 화제의 프로그램에선 무대에 오를 수 없는 그를 주인공으로 이번 시즌을 마무리할 예정이고, 드라마의 대모 김수현 신작에서 엇갈린 사랑을 추억하는 여주인공의 회상 뒤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흐른다. 공중파 오디션프로그램에선 채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친구들이 기타를 메고 나와 김광석의 노래를 부른다. 1996년 겨울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 가수의 흔적이 남긴 2013년 겨울 지금의 풍경이다.
대중의 바로미터인 방송이나 공연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오늘도 김광석을 듣고, 노래하고, 추억한다.’ 누구나 저마다의 ‘김광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우리가 ‘신화’처럼 기억하는 김광석의 참된 목소리이긴 한 걸까. 여기 저마다의 신화에 가린 한 인간의 진실한 기록이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그는 왜 그토록 쓸쓸하고 외로워했는가!
20여 년 만에 처음 공개되는 그의 마음의 소리
《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는 김광석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여러 시간에 흩어져 남긴 일기, 수첩 메모, 편지, 노랫말 등을 모은 것으로, 저작권자인 유가족의 동의하에 그의 숨결이 최대한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글의 성격에 따라 재구성한 책이다. 실제로 그가 직접 쓴 글들로 날짜가 기록된 것도 있고, 가위표가 그어진 것도 있다. 악보처럼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의 숨결이 절절히 묻어 있는 글들을 총 3부로 나눠 갈무리했다. 서른둘이란 나이였음에도 1989년 1집을 시작으로, 1995년 《다시부르기 2》까지 여섯 장의 음반을 남기고, 1,000회가 넘는 소극장 공연을 할 만큼 그의 삶은 짧지만 뜨거웠다. 그 시간 동안 남겨진 메모들은 그의 삶에 비해 양이 많지 않지만, 그가 직접 남긴 마음의 기록이기 때문에 어떤 노래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실제로 김광석 본인의 글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6년 1월 생일을 보름 남짓 남겨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광석에 관한 숱한 기념 음반과 평전까지 출간된 걸 감안하면 이는 낯선 사실이기까지 하다.
휴식을 꿈꾸던 김광석, 꿈이 되어 노래 부르다
67개의 육필 원고와 64곡의 미완의 노래 최초 공개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그의 삶을 공연으로 대하듯 담담한 목소리의 서(序)가 시작되면 〈PART Ⅰ 겨울은 봄의 어제, 봄은 겨울의 꿈_혼자 부르는 노래〉 무대가 열린다. 이 시간의 기록들은 김광석이 아직 대중적인 호응을 얻기 전의 생활과 마음을 짐작하게 한다. “라면과 소주, 쓸쓸한 뒷모습, 흙먼지 신촌 포장마차, 고춧가루 뿌린 우동가락” 같은 일상의 풍경 속에서 아직 손에 잡히지 않은 음악에 대한 꿈, 곤궁한 일상에 대한 걱정 등이 핍진하게 기록되어 있다. 무엇보다 “돈을 구하러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주차 관리인과 은행원들 사이에서 바라본 아버지. 속도 상하고 화도 나고 해서 애꿎은 은행원만” 타박하는 기록에선 ‘신화’에 가린 한 생활인으로서 김광석은 어떠했는지 진솔하게 기억하게끔 한다. 하지만 이 파트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마음의 평안이나 그저 안일한 평화가 주는 심심함보다, 가슴이 파이고 흐느끼는 밤이 있더라도 사랑하는 쪽을 택하리라. 적어도 내 자신에게만은 부끄럽지 않은 솔직한 사랑을 위해” 살고 싶어 했던 그의 ‘아포리즘’에 가까운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김광석 음악의 어떤 근원을 알 수 있다.
〈“3월 2일부터의 공연으로 1993년 한 해 공연을 시작했다.”_1993년 3월 16일의 일기에서〉로 시작되는 〈PART Ⅱ 악보에는 마침표가 없다_거리에서 부르는 노래〉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김광석의 뒷모습이 때로 가슴 아리게 드러난다. 세상에 눈뜬 대학 시절, 큰형님의 죽음, 딸을 의사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받아내게 된 사연, 〈사랑했지만〉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이등병의 편지〉 등의 노래를 부르게 된 계기 등을 직접 설명하고 있다. ‘또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1,000회가 넘는 공연으로 그 어느 누구보다 관객 가까이 있었던 가수. 하지만 마치 자신의 삶을 예감한 듯 타오르는 모습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만큼 화려하진 않다. 그는 무대에서는 누구보다 행복했지만 그만큼 쉼을 갈구했다. “공연이 중반을 넘어섰고, 다들 축하해주고 열심이었다고, 특종이라고 악의 없는 칭찬들이다. 나의 마음속에 일고 있는 허전함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를 치열하게 해준 것은 무엇이었나. 후회도, 보람도 아닌 그저 살아 있음에 움직인 그 움직임이 불쌍한가. 무료하다. 즐겁지 않은 이유를 모른 채 나는 즐겁지 않다. 또 이러다 가라앉는 것인가.”라고 고백한다. “6월의 지방 공연들과 7월 공연을 끝으로 쉴 것이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천천히 흐를 것이다.”라고 다짐했던 김광석은 어서 마흔이 되길 바랐다. 그는 “마흔이 되면 하고 싶은 게 있다. 오토바이를 하나 사고 싶다. 멋진 할리 데이비슨으로! ……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일주 하고 싶다.”고 꿈꾼다.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기억에 남는 일로 1993년도의 15박 16일의 미국 여행을 꼽았을 만큼 그는 여행과 휴식에 목말라했다.
마지막 〈PART Ⅲ 꽃이 지네 눈물같이_미처 부르지 못한 노래〉는 그런 김광석이 미처 부르지 못한 노래들을 모은 것이다. 기타를 몸의 일부처럼 여긴 싱어 송 라이터였던 만큼 그는 60곡이 넘는 미완성곡의 음표와 가사들을 악보와 노트, 메모지 할 것 없이 곳곳에 남겨놓았다. 1부와 2부의 단상들이 결국 3부의 미완성된 노래들로 수렴된다고 볼 수 있을 만큼 그는 천생 ‘가수’였던 것이다. 아마 그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기록이 아닌 아름다운 노래로 듣고 있을 것이다.
“꿈에서라 볼 수 없는 세상을 노래로 본다.”
김광석이 남긴 메모다. 그가 떠난 지 20여 년이 가까워오는데도 우리가 그의 노래를 부르고 기억하는 건, 그가 그곳에서 영원히 노래를 부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미처 다 하지 못한》은 그의 노래에 대한 우리의 뒤늦은 대답인지 모른다. 메아리는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같은 대답이므로, 이 책이 그의 목소리에 대한 메아리로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우리의 김광석, 나의 김광석이 아닌 김광석이 말하는 김광석은…… 기타를 수집하고, 수박색을 좋아하며, 새벽을 사랑한다. 대구의 어느 시장 골목에서 형 둘, 누나 둘의 막내로 태어나 자랐다. 여섯 살 무렵 서울로 올라와 창신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책상 서랍 속 물건들은 항상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교복 단추 하나 풀어헤칠 줄 모를 만큼 얌전한 아이였던 그는 중학교 현악반에 들어가 다양한 클래식 악기를 접하면서 음악에 눈뜬다. 고등학교 합창단, 교회 성가대 활동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함께 성장한다. 음악 활동을 반대했던 집안에서 작은형은 그의 든든한 후원군이었다. 바이올린과 기타를 처음 사준 것도 그였다.
갓 스물이던 1984년, 노래극 <개똥이>를 제작 중이던 김민기를 만난다. 이때의 인연들은 훗날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으로 이어진다. 처음 참여한 음반 작업이 시대 상황으로 지연되는 와중에 군에 입대하지만 직업군인이었던 큰형을 불의의 사고로 잃고 6개월 만에 제대한다. ‘태어나서 가장 슬픈 일’을 겪고 잠시 방황에 빠진 그를 구원해준 것 역시 노래였다. 고려대학교 앞에서 ‘고리’라는 카페를 운영하며 훗날 ‘동물원’으로 이어지는 음악 친구들과 카세트테이프로 자기들만의 음반을 제작한다. 이것이 ‘산울림’ 김창완의 눈에 띄어 1988년 《동물원》 1집이 나왔다. 하지만 현실적인 고민을 안은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홀로 남은 그는 ‘노래로 사는 삶’을 선택한다.
그렇게 우리가 오늘도 듣고, 부르고, 기억하는 네 장의 정규 음반, 두 장의 리메이크 음반과 함께 1,000회가 넘는 소극장 공연을 마치고 그는 자신의 서른세 번째 생일을 보름 남짓 남겨둔 새벽, 노래를 다한 기타처럼 스러진다. 지금 그는 어린 시절 살던, 고개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암자에 잠들어 있다.
그가 남긴 음악은 <거리에서>가 든 《동물원》 1집 이후 <기다려줘> <너에게> 등이 담긴 1집(1989년), <사랑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날들> 등이 수록된 2집(1991년), 첫딸을 얻은 ‘세상에서 가장 기쁜 경험’ 때문인지 <자장가>와 <나의 노래> <외사랑>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등이 실린 3집(1992년), <일어나>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 지금까지 수없이 불리는 노래들이 수록된 네 번째이자 마지막 정규 앨범(1994년)이 있다. 2000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주제곡으로 삽입되어 지금도 청춘의 송가인 <이등병의 편지>, 80년대의 민중가요를 그의 목소리로 기억하게 한 <그루터기> <광야에서>가 실린 《다시부르기 1》(1993년),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등 잊힌 명곡을 부활시킨 《다시부르기 2》(1995년)가 있다.
서序
01 겨울의 봄의 어제, 봄은 겨울의 꿈
02 악보에는 마침표가 없다
03 꽃이 지네 눈물같이
에필로그
부록 다시 부르는 김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