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잘 가라, 미소 - 김정남 소설집

잘 가라, 미소 - 김정남 소설집

저자
김정남
출판사
삶이보이는창
출판일
2012-12-07
등록일
2012-12-27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420 Bytes
공급사
우리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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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안개에 갇힌 사람들,
고단한 이 생(生)을 욕망하다

지난 2010년 첫 소설집 『숨결』을 펴냈던 평론가이자 소설가인 김정남이 두 번째 소설집 『잘 가라, 미소』를 내놓았다. 2002년 『현대문학』에 평론이,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작가 김정남은 이번 소설집을 통해 비정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욕망을 그려내고 있다.

단련된다는 말, 믿지 않는다. 고통은 매번 날것인 채로 다가온다. 진창길을 너무 오래 걸었다. 그 길 한구석에 퍼질러 앉아 있을 때마다 소설이 곁에서 내 말을 다 들어주었다. 그렇게 지은 두 번째 집을 세상에 내놓는다.
무책임한 긍정은 도저한 허무보다 해롭다. 갈수록 뻔뻔해지는 세상에 맞서 내 글이 어두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작가의 말」중에서

「작가의 말」에서 드러나듯 작가의 생각은 분명하다. 무책임한 긍정은 도저한 허무보다 해로우며, 갈수록 뻔뻔해지는 세상에 맞서 자신의 글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것. 수록된 아홉 편의 작품들 속 세상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서처럼 안개가 잔뜩 낀 희뿌연 곳이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중략)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는 바로 그 안개. 끝없이 이어진 길을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은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세상에 한숨을 내쉰다. 이 세상은 대체 어떤 곳이란 말인가.


세상의 병적 징후를 읽어내는 힘,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미학

『잘 가라, 미소』속 인물들은 저마다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 비정한 세상은 그들에게 연민을 베풀지 않는다. 「에움길」의 영웅은 대학 시절 사귀던 여자 친구와 만나지만, 그녀는 이미 룸살롱의 마담으로 전락한 신세다. 자신도 대리운전을 하며 가까스로 먹고사는 일을 해결한다. 「비정성시」의 여자는 남편을 잃고 퇴폐이발소에서 손님들에게 마사지와 자위를 대신 해결해주는 일을 한다. 「봉인된 시간」의 부부는 경제난에 허덕이다 지방으로 내려가 살 집을 찾는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의 중심부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 대학 시간강사, 시간제 교사, 퇴폐이발소 직원 등등. 뿌연 세상 속 숨겨진 그들의 욕망은 다양한 형태로 그려진다. 때때로 그것은 여관방에서 포르노를 보는 남자의 모습으로, 퇴폐이발소에서 자신의 성기를 낯선 여성에게 맡기는 남자들의 모습으로, 거침없이 쏟아지는 욕의 향연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거친 ‘날것’의 묘사들은 불편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세상의 어떤 부분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거기는 아침저녁으로 짙은 해무가 고여드는 곳이다. 산허리를 툭 베어내고 도로를 만들었는데, 언제나 해풍은 도로 옆 가파른 절벽 아래로 안개를 부려놓는다. 희미하게 불을 밝히고 서 있는 가로등은 이곳이 도로임을 알려주고 있을 뿐, 실제로는 안개의 점성을 이기지는 못한다. 사건은 그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안개주의보」중에서

이런 세상에서 대책 없는 긍정은 차라리 무책임한 것. 고단한 생(生)을 이어가는 인물들에게는 안개의 점성을 이겨낼 재간이 없고, 그래서 그들은 허무에 빠져든다. 허무의 포지션으로 자신들의 보호벽을 세운 사람들. 『잘 가라, 미소』는 괴물이 된 세상에서 괴물이 되기로 작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들은 모두 피해자다. 이 세상, 자본주의라는 이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주변부 밖으로 밀려났거나, 점점 아래로 떨어져가는 사람들이다.
김정남의 소설들은 그들을 둘러싼 세상의 그 병적 징후를 읽어내며, 비극에 놓인 사람들에게 연민을 보낸다. 대책 없는 긍정이 아닌 허무를 지나고 나서야 얻게 된 그 귀한 연민. 그들은 아파하되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 자신들에게 남은 욕망이자 운명인 것처럼. 절망도 희망도 쉽게 제시하지 않지만 그만큼 신중한 결말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잘 가라, 미소』가 지닌 고유의 미덕이다. 쉬운 희망은 그만큼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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