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 - 박완서 문학앨범
“당신에게서 삶을 견뎌내는 힘을 얻었습니다”
박완서가 남긴 인생과 문학의 아름다움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박완서, <나목> 중에서
많은 독자들과 비평가들이 지적하고, 스스로 인정하듯, 박완서의 문학은 끔찍하게 황폐했던 한국전쟁의 상흔에서 출발했다. 작가에게 겨울은 그 황폐함과 쓸쓸함의 상징이었다. 스무 살 대학 새내기 생활 며칠 만에 발발한 전쟁은 소녀의 발랄한 웃음과 꿈 많던 청춘을 앗아갔고 그의 오빠와 숙부를 데려갔다. 벌거숭이 겨울나무 같았던 세월이었지만, 애처롭게 떨기만 했다면 박완서 문학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의 눈은 다른 것을 보았던 것이다.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는 작가 박완서가 자신의 삶을 정리한 산문과 두 편의 자선대표작, 그리고 작가 곁에서 따뜻한 온기를 함께 나누며 지냈던 딸과 동료 문인들의 글로 이뤄져 있다. 여고생 시절부터 임종 직전에까지 이르는 사진들도 한국 문학 독자들이 가장 사랑했던 한 작가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글과 사진을 들여다보면 작가가 독자들에게 꼭 남기고 싶었던 말이 드러난다. 그건 아무리 아픈 말을 해도 그 뒤에는 언제나 그리움과 따뜻함이 남았던 박완서 문학 그 자체이다. 나목이 의연할 수 있었던 건 봄을 믿었기 때문이 아닌가.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
박완서, 이야기의 효능에
꿈을 걸다
스무 살, 전쟁이 앗아갔던 박완서의 꿈은 평범한 주부였던 마흔 살에야 되살아난다.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힘을 내라고 용기를 가지라고 직접 타이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에 새겨진 수많은 상처를 이야기로 풀어냈을 뿐이었다. 독자들은 그 이야기를 통해 삶을 견뎌내는 힘을 얻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작가가 심심할 때나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 때나 외롭고 속상할 때 언제나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병통치약 삼아 용기를 얻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에는 박완서가 스스로 밝히는 그의 삶과 문학이 있다. 박완서는 이야기의 효능과 자신에게 소설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 밝히고, 한국전쟁 직후 박수근 화백과의 인연을 매개로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을 공개한다. 그리고 작가가 직접 선정한 두 작품 <해산바가지>와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각각 며느리와 아내의 위치에서 느꼈던 작가의 깊은 속마음을 보여 준다.
다양한 사진과 에세이,
소설보다 치열하고 아름다웠던
박완서의 삶을 들여다보다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의 사진들은 작가의 소중한 일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텃밭을 일구는 모습과 땅에 떨어진 살구를 맛보는 모습 등 작가의 소박한 일상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작가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등단 이전의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시절, 또 타계 직전의 가장 최근 모습까지 70여장의 사진들은 우리가 즐겨 읽었던 그의 소설 속 어느 장면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다.
가까이에서건 멀리서건 줄곧 박완서를 지켜봐온 사람들의 이야기도 작가의 삶과 문학을 다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맏딸 호원숙 선생은 작가의 연대기와 작가의 임종 이후의 이야기 등을 들려주고, 후배 소설가 김영현 선생은 작가와 함께 했던 여행을 비롯, 다양한 에피소드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작가의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을 소개하고 비평한 문학평론가 김병익 선생은 작가와의 인연과 작가의 문학적 성취를 평론이 아닌 에세이로 풀어냈으며, 또 다른 박완서 연구자인 문학평론가 권명아 선생은 박완서 문학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며 독자들에게 작가의 소설을 이해하는 길을 제시한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나목(裸木)』으로 등단.
등단 이후 신랄한 시선으로 인간의 내밀한 갈등의 기미를 포착하여 삶의 진상을 드러내는 뛰어난 작품 세계를 구축.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1975), 『창 밖은 봄』(1977), 『배반의 여름』(1979), 『도둑맞은 가난』(1981), 『엄마의 말뚝』(1982), 『서울 사람들』(1984), 『꽃을 찾아서』(1985), 『저문 날의 삽화』(1991), 『나의 아름다운 이웃』(1991), 『한 말씀만 하소서』(1994) 등의 창작집과 『휘청거리는 오후』(1977), 『목마른 계절』(1978), 『욕망의 응달』(1979), 『살아 있는 날의 시작』(1980), 『오만과 몽상』(1982),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 『서 있는 여자』(1985), 『도시의 흉년』(1979),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미망』(1990),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2) 등의 장편소설 발표.
1981년 <엄마의 말뚝 2>로 제5회 이상문학상을, 1993년에는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로 제19회 중앙문화대상 예술대상을, 같은 해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제 38회 현대문학상을, 1994년에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으로 제25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머리말(박완서)
따뜻함이 깃들기를(호원숙)
나에게 소설은 무엇인가(박완서)
모녀의 시간(호원숙)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호원숙)
자선대표작
사는 동안 정신머리 꼭 챙기게(김영현)
미래의 해석을 향해 열린, 우리 시대의 고전(권명아)
박완서, 거짓된 세상 아프게 껴안다(김병익)
부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