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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 이후 - 떠나야 했던 사람들 그 내밀한 삶의 기록들 : 실천과 사람들

유랑, 이후 - 떠나야 했던 사람들 그 내밀한 삶의 기록들 : 실천과 사람들

저자
최화성
출판사
실천문학사
출판일
2014-08-19
등록일
2015-01-29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19KB
공급사
우리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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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파독 50주년, 루르 지역 8개 도시를 떠돌며 만난
디아스포라 1세대의 이야기

“우리는 민들레 홀씨야.
빈 몸으로 날아와 아무 데다 시멘트 뚫고 살았고 번식력도 강하니까.”

파독 50주년을 맞아, 독일 이주 노동자들의 르포르타주 <유랑, 이후>가 '실천과 사람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으로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그간 '실천과 사람들'에서는 용산 문제를 다룬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희망버스 기획자인 송경동 시인의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 연세대 청소노동자의 투쟁 기록을 담은 <빗자루는 알고 있다>, 재개발에 저항해 생존권을 걸고 농성한 칼국숫집 두리반 이야기 <매력만점 철거농성장>, 부속인간의 삶을 그린 노동 르포르타주 <노동계급은 없다>를 선보이며 우리 사회 이면에 숨은 권력의 횡포와 부조리에 정면으로 맞서 자신들의 인권과 권리를 지키려고 한 불빛들을 세세하게 밝혀왔다.
이번에 출간된 <유랑, 이후>는 스스로를 민들레 홀씨라 부르는 사람들. 바로 50여 년 전, 20킬로그램짜리 가방 하나를 들고 8천 킬로미터를 날아 독일에 정착한 우리네 청춘을 다루고 있다. 저마다의 꿈을 안고 독일에 뿌리내린 7,936명의 광부와 10,032명의 간호사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유랑, 이후』는, 이제는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의 이주, 월남 파병, 중동과 독일로의 이주노동 등 우리 사회가 잊고 있던 한인 이주사의 한 자락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 동시에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희생된 사람들’, ‘상업차관을 받기 위해 팔려갔던 수출인력’ 등 시대가 만들어놓은 일방적인 해석으로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떠나야 했던 이유와 정착하여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유럽으로 진출한 한인 1세대의 진취적인 이주사로서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자 한다.

라인 강의 기적을 만든 사람들

2차 세계대전 후,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던 독일을 되살린 ‘라인 강의 기적’. 그 중심에는 세계적인 광공업 지역으로 이름을 떨친 루르 지역의 광산들이 있었다. 당시 루르 지역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들 대부분은 세계 각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들. 그중에는 한국에서 날아온 7,936명의 청춘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하 1천 미터의 막장에 들어가 지열 40도가 넘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작업을 했다. 무엇보다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독일 사람들의 체구에 맞춰 만든 ‘쇠동발’을 비롯한 채탄 기구들. 파독 광부들은 무려 50킬로그램이 넘는 쇠동발을 어깨에 메고 매일 막장 속을 전진해야만 했다. 그들이, ‘쇠동발 붙들고 울어보지 않은 한국 광부가 없다’는 말을 낳을 정도의, 극한의 노동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3년만 참으면 고국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3년 후면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꿈을 이루기에 3년이란 기간은 너무 짧기만 했다.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2년 이상의 실무경력을 가지고 있던 10,032명의 간호사들. 그녀들 대부분은 한국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수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독일 병원에서 처음 맡은 일은 걸레 빨기, 바닥 청소, 환자 목욕시키기 등의 온갖 허드렛일이었다. 그녀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종종 수모와 무시를 당해야만 했고,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희생과 헌신을 온전히 감당해냈고, 서서히 독일 사람들을 감동시켜 어느덧 그녀들에겐 ‘동양에서 온 천사’라는 호칭이 붙어 다녔다. 마침내 그녀들은 무기한 노동권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3년이라는 체류기한 후에 쫓겨나야 했던 광부들이 체류연장을 위해 간호사들과 결혼하면서 독일에 한인사회가 정착하게 되었다.

이주민의 삶으로 엮은 모자이크

한국에서의 가난이 싫어 1977년, 마지막 광부로 파독한 김대천 씨. 독일에 온 지 35년이 넘었지만, 그는 여전히 독일어를 못한다. 초등학교조차 졸업 못해 한글조차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그에게, 독일어는 오르지 못할 거대한 산. 하지만 그와 그의 가족은 한국에서의 가난을, 한국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곳이 독일이든 멕시코든 우주의 어느 별이든 간에.

한국전쟁 이후, 인민위원회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큰형을 잃은 이종현 씨. 그는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독일에 왔다. 광부로 일을 하며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파독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했다. 남과 북이 아닌 코리아에서 왔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과 꼭 닮은 독일인 부인을 만나 서로 절반은 한국인으로 절반은 독일인으로 살고 있다.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광부로 파독한 김진인 씨와 파리 구경을 간다며 간호사로 파독한 최정복 씨 부부. 그들은 독일에 정착해 살며 다채로운 국적의 가족을 이루었다. 딸은 독일인과, 아들은 우즈베키스탄 한인 4세와 결혼한 것. 이 다양한 국적의 가족은 올해 안으로 한국을 찾을 것이라고 한다. 바로 가족의 피가 뻗어 나온, 가족의 뿌리가 된 땅을 보여주기 위해서.

『유랑, 이후는』 이들 외에도 파독 열 가족의 이야기들을 통해 개개인의 삶을 이주라는 씨실로 엮어 나가고 있다.

끝나지 않은 이주민의 삶

그들이 독일에 온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위한 방편으로 온 이들부터, 가난한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온 이들, 정치적인 이유로 떠나온 이들, 파독 간호사를 꿈꾸던 어머니를 대신하기까지. 그 후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독일에 정착하였고, 한국에서 살아온 나날들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독일에서 살아왔다. 집 안 곳곳에 태극기를 걸어두고, 공원에 걸린 만국기 속 태극기를 보기 위해 매일 왕복 두 시간을 걸을 만큼 고국에 대한 향수가 가득한 그들이 한국에 돌아올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이주민의 삶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없기 때문. 그들 대부분은 독일에 뿌리를 내린 한인 2세들을 두고 돌아온다면, 50여 년 전 가족을 두고 떠나왔던 이주민의 삶이 계속될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독일에서 성공한 삶을 살았든,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만큼 각박한 삶을 살았든, 또 50여 년이 넘도록 독일어조차 못하고 살았든지 간에, 그들은 끝나지 않은 이방인의 삶을 견뎌야만 한다고. 처음 20킬로그램짜리 가방을 메고 찾았던 우리네 청춘들. 이제껏 독일에 살고 있는 이들의 20킬로그램짜리 가방은 이제 어떻게 되었을까?

“독일은 이민국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노동 인력일 뿐이었지요. 10년 넘게 한쪽 발만 걸치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문 앞에 서 있는 심정이었지만 문을 열고 받아주지 않았어요. 이제 와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또 이방인인 거예요. 영원한 이방인의 삶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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