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지 마라, 슬픔아 - 루게릭병 엄마를 돌보는 청년, 그 짧아지는 시간의 기록
스무 살부터 8년간 루게릭병 엄마를 돌보고, 그 엄마를 떠나보낸 아들의 이야기
군대 입대를 앞둔 어느 날 엄마가 루게릭병을 진단받았다. “아들아, 엄마 2년밖에 못 산대.” 아들은 답했다. “엄마, 나 제대할 때까지 꼭 기다려.”
지옥 같은 유격훈련이 끝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사히 마쳤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길고긴 송신음 끝에 울음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수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살려 달라고, 죽고 싶지 않다고. 귀가 먹먹했다. 아빠가 전화기를 뺏어 몇 마디를 하고는 급히 전화를 끊었다. 첫휴가를 나와서 알았다. 엄마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제대 후, 어릴 적부터의 꿈인 소방관 시험을 치렀지만 백지 답안지를 제출했다. 얼마 남지 않은 엄마 곁을 지키고 싶어서였다. 장래의 꿈도, 여학생이 수줍게 건넨 연락처가 적힌 쪽지도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내가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엄마를 간호해야 하는데.
엄마의 말이 점점 어눌해졌다. 모래에 빠지는 개미지옥처럼 몇 마디 하기도 힘겨워했다. 집 안에서 사람 소리가 사라졌다. 엄마는 녹음을 하자고 했다. 나중에 숨을 못 쉬어 긴급한 상황이 된다면 호흡기를 달지 말라고. 유언이었다. 녹음이 끝나자 엄마도 울고 아들도 울었다.
하루는 엄마가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말하는 것을 받아적고, 읽어주고 수정했다. 시 한편을 쓰는 데 보름이 걸렸다. 시들어가는 엄마의 글에서 소녀 감성이 풋풋했다. 책 곳곳에 등장하는 엄마의 글에서 한 마디 한 마디 힘겹게 뱉어낸 삶이 응축되어 있다.
두 발로 밖에 나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엄마가 부러워할까 두려워 저자는 한참 동안 대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밖에 나갔을 때 집 앞에 있던 오래된 건물이 새 건물로 바뀐 걸 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급기야 엄마는 움직이지 못하고, 목소리마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거실 소파에 누워 하염없이 TV를 바라보던 엄마는 작은 아우성을 외친다. 숨소리보다 작은 엄마만의 언어를 알아듣고 그때마다 아들은 달려간다. 엄마는 방에 들어가서 자겠다고 한다. 이내 다시 작은 아우성이 들린다. 잠이 안 온다고 다시 소파에 앉혀 달라고 했다. 몇 번을 반복하자 아들은 웃으며 말했다. 혹시, 고문관이세요? 엄마 이제 진짜 자는 거야, 알았지? 엄마는 미소를 띤 채 눈을 한 번 깜빡 했다. 10분 뒤,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쉰일곱 해를 마감했다.
그 후 아들은 엄마가 늘 가고 싶어하던 호주로 떠났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와 만화책에 빠져 살았다.
등교하기 전 만화방을 먼저 들렀고 수업시간에는 영화만 봤다.
스무 살 때까지 책 한 권을 정독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 처음으로 밤을 새우며 읽은 책이 여행 가이드북. 그 후로 여행에 대한 로망이 생겨 집 주변에서 노숙을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겨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읽기를 꺼려하고 쓰기를 즐긴다.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오로지 냄새 때문이다.
곰팡이 냄새.
2019년 제3회 경기 히든작가 공모전에 당선되었다.
브런치 @djaak3sovus8
저자소개
글을 시작하며_그리고 너는 내 안에 살아간다
제1장_믿고 싶다
제2장_짧아지는 날들
제3장_가족
제4장_엄마의 이름으로
제5장_떠나지 못한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