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말을 쏘았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 할리우드 스타를 꿈꾸는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난다.
“글로리아와의 인연은 조금 우습게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때 그녀도 나처럼 어떻게든
영화판에 들어가려 애쓰는 신세였다.
…
그 만남이 아니었다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 그녀를 보러 간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혼과 근친 성폭력 등 비참한 삶을 살아온 글로리아. 우연히 놓친 버스의 정류장에서 로버트를 만나게 되고 둘의 운명은 시작된다. 대공황 시절이라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도 힘겨운 암울한 시기. 배경이 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곤 삶의 단조로움과 무료함, 그리고 죽음뿐이다. 그곳에서 댄스 마라톤이라는 명목하에 참가자들이 수개월 동안 마지막 커플이 남을 때까지 원형 경기장을 끝없이 도는 행사가 열린다. 이 대회에 참가하면 숙식이 제공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글로리아는 로버트에게 한팀이 되어 출전할 것을 제안한다.
글로리아의 제안으로 로버트는 그녀와 함께 댄스 마라톤 대회에 커플로 참가하게 된다. 쉬지도 않고 끊임없이 춤을 추고, 대회 중간중간 마라톤 경주도 한다. 남녀 한 조가 커플이 되어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춰야 한다. 1시간 50분 동안 춤을 추고 10분을 쉰다. 잘 수도 없고, 쉴 수도 없고, 오로지 10분의 휴식 시간에 세면과 식사, 수면을 해결해야 하는 광란의 대회. 심신이 피폐해진 버려진 영혼 같은 젊은이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삶의 목적이나 꿈도 상실한 채 오로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 그들을 이용하여 온갖 쇼와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흥행업자. 동물원처럼 우리에 갇힌 비참한 동물들을 구경하고 즐기기 위해 입장한 관객들. 이 모두가 한데 어우러진 총체적인 비극은 끝을 알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실제 일어났던 일이라고 믿을 수 없는 이 기괴한 댄스 마라톤 대회는 인생의 무작위와 불합리, 그리고 무의미를 완벽히 보여주는 삶의 축소판이다. 대회가 막바지에 이를수록 글로리아는 끝없는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그런 그녀를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로버트도 함께 절망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고 긴 암울한 현실의 터널 끝에서 작고 소박했던 그들의 꿈은 점점 사치로 변질한다. 소망하는 작은 평범한 삶조차도 버거운 그들에게 희망이 피어날까? 아니 헛된 꿈이라도 품어 보기는 한 걸까?
“나는 가만히 바다를 내다보며 할리우드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그곳을 가본 적이 있기는 했던가.
혹시 이 모든 게 꿈이어서,
곧 아칸소 집에서 깨어나 배달할 신문 더미를 안고
허겁지겁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건 아닌가.”
대회가 진행될수록 극도의 피로감에 꿈과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추악한 인간의 욕망이 치부를 드러내며 처절하게 이어지던 대회는 몇 발의 총성으로 또다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죽어야만 끝날 것 같은 이 대회는 역설적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황망하게 끝이 난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우리의 삶처럼 이 대회는 막을 내리게 되고, 더는 삶의 의미가 없다고 얘기하는 글로리아. 그녀는 로버트에게 총을 건네고 마지막 부탁을 한다.
저자 : 호레이스 맥코이
미국 테네시주 인근의 가난한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주 방위 공군에 입대하여 프랑스에 파병되었다. 소설가가 되려고 신문사에 들어가 스포츠, 범죄 취재기자로 일했으나 부유층과 교류하면서 지나친 소비와 방탕한 삶을 보내며 가산을 거의 탕진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후 맥코이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샌타모니카에서 열린 마라톤 댄스 대회의 경비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한 소설 〈그들은 말을 쏘았다〉를 완성해 출간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 소설을 가리켜 “미국에서 탄생한 최초의 실존주의 소설”이라고 극찬했다. 유럽에서 맥코이는 포크너, 헤밍웨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 작가로 주목받았다. 새 소설을 집필하던 중 1955년 12월 쉰여덟 살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내는 그가 모아둔 책과 재즈 앨범을 팔아 겨우 장례식을 치렀다.
역자 : 송예슬
대학에서 영문학과 국제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다. 글밥 아카데미 수료 후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 《미국,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꿈꾸는가》 등이 있다. 계간지 《뉴필로소퍼》 번역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고양이 말리, 니나, 잎새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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