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억울한가 - 법률가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에서의 억울함
“우리는 왜 억울한가?”
억울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 대한민국,
현직 부장판사가 던지는 본질적 질문과 통찰
현재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대표적인 정서를 꼽으라고 한다면 ‘억울함’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구조 속에서 빈부격차와 상대적 박탈감이 날로 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대한 불만과 강한 억울함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현직 부장판사가 한국 사회의 보편적 정서인 ‘억울함’을 개인적 경험, 법률 지식, 다양한 사회과학적 관점으로 풀어낸 책, <우리는 왜 억울한가>를 출간해 화제다.
현직 판사인 저자는 수많은 법률 사건을 경험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보며 ‘억울함’이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재판정에 오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억울하다”고 말한다. 재판에 이기는 사람도, 지는 사람도 모두 억울하다고 한다. 또 판사는 흉악한 살인범이나 소위 말하는 패륜범, 파렴치범들의 억울한 사정조차 흘려듣지 않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끊임없이 ‘왜 억울한가’를 질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의문을 갖고 고찰하던 중 서양의 학문에 연원을 둔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서는 억울함을 감정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 한국인에게 심정이라는 것이 유난히 발달했다는 견해를 접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 점에 착안해 법률가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에서의 억울함을 살펴보고자 했다. 자신이 직접 다루거나 경험한 사례들을 들어 억울함의 개인적 감정과 인식으로서의 측면, 그리고 사회적 판단으로서의 측면을 고루 살피고, 그 사이의 간극을 파헤쳐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억울함과 사회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억울함이 어떤 것인지 모색한다.
한국인들이 유난히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개인이 심정적으로 느끼는 억울함과 사회적 틀에서 받아들여지는 억울함의 차이는 무엇인지, 그늘지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법률적 정의는 양립할 수 있는지 등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논리를 전개한다.
법정에서 대립하는 당사자는 매번 말을 다르게 합니다. 각자가 주장하는 사실관계도 다르고 그에 대한 해석도 너무 다릅니다. 상당히 수양이 되어 있어야만 양쪽의 입장과 변명을 끝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끝까지 듣는다 하더라도 진짜로 억울한 경우, 다소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 아니면 억울하다는 말이 거짓이거나 자기만의 생각에 불과한 경우 등을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애써 구분한다고 하더라도 의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과연 사건의 당사자가 그 판단에 수긍할 것인가? 이후에도 결코 치유되지 않을 상처와 안타까움은 어찌할 것인가? 지금 이 사회 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진정 정의롭고 도덕적인 것인가? ―9쪽
심리학자가 보는 억울함은 법률가가 객관적으로 보고자 하는 억울함과 상당한 시각적 차이가 있다. 법률가는 과연 억울해할 만한 상황인지를 주로 따지는 반면, 심리학자는 억울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는 현상 자체나 주관적으로 억울한 감정을 느끼게 된 원인을 살핀다. 법률가는 억울함이 기본적으로 불공정함, 부당함으로 인해 생긴다고 생각하는 데 비해, 심리학자는 그것뿐만 아니라 자기피해의식이 많이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법률가는 억울해하지 않아야 할 상황에 억울하다고 느끼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는 반면, 심리학자는 오히려 그런 측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정신의학자는 억울함 자체보다는 억울함으로 인해 생기는 제반 병리현상을 연구한다. 하지만 정신의학자도 그런 병리현상을 치유하기 위해 왜 억울한 심정을 느끼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파고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 경우 연구는 당연히 법률가보다는 심리학자의 접근방식에 더 가까울 수밖에 없고, 거기에 유전적·기질적 원인을 추가하고, 치료에 있어서는 약물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32쪽
날카로운 문제의식, 사회학적 상상력, 법적 균형감각으로
풀어낸 억울함의 실체와 해법
이 책은 주로 법률 지식과 사례들을 다루지만 접근법은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다. 저자 개인의 경험과 다양한 실제 사례들을 통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크고 작은 억울함의 원인과 타당성 여부를 자연스럽게 따져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수많은 교통사고 민.형사사건을 다뤄본 부장판사지만, 막상 자신이 접촉사고 당사자가 되었을 때는 억울하고 이해하기 힘들었던 처리과정을 소개하면서 억울함이란 보편적 정서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지극히 특별한 감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 집행유예 기간 중 전치 4주의 상해를 입히고 담배 4보루를 훔친 피고인이 징역 7년에 처하게 되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법적 형량과 비례의 원칙에 대해 고민해보게 한다.
저자는 다양한 비유를 통해 법의 논리와 재판의 본질에 대해서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이를 테면, 재판을 축구경기에 빗대어 설명한다. 재판은 대립되는 당사자가 다투는 것이고, 법관은 공정한 규칙을 적용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판단하는 심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이 논리는 법관이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상식과 배치되는 듯하다. 하지만 법관이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게임의 룰을 한쪽에 유리하게 운영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가치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그럴 경우 수많은 억울한 사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억울함이라는 복잡 미묘한 주제를 통해 다양한 법적 쟁점을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새롭고도 참신한 시도이다. 저자의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사회학적 상상력, 법적 균형감각이 잘 어우러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억울함이란 것이 이렇다. 명백히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대우를 받았을 때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뭔가 좋지 않은 상황이 외부의 요인으로 생겼을 때 굳이 꼭 찍어서 말하긴 어려워도 괜히 짜증나고, 분하고, 밉고, 그런 불편한 심정을 통틀어 억울하다고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억울함은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인 정서이지만 나 자신에게는 늘 특별하다. (…) 법률가로서 남들의 억울함을 직업적으로 다루고 늘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애쓰지만, 정작 나에게 발생한 사소한 사건에서 그 억울한 심정을 억누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분명 일반인들에게는 이런 현상이 훨씬 더 심하게, 그리고 자주 발생할 것이다. ―25쪽
축구에서는 실력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받아온 팀이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실력이 더 나은 경우도 있고, 부족한 실력을 조직력이나 투지로 커버해서 게임을 이기는 때도 있다. 재판에서도 언뜻 보기에 이기기 어려울 것 같은 당사자가 예상 외로 설득력 있는 주장과 증거를 제시할 때가 있고, 소송대리인이나 변호인이 경험이 부족해 보여도 패기와 진정성을 보여 판단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아니 그런 경우가 아주 많다. 이는 재판장이 어느 한쪽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이겨야 하는 사건인지를 자연스럽게 찾아가는 과정이다. ―112쪽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법적 쟁점들,
쉽고 재미있게 풀어쓴 법 이야기
이 책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와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법적 쟁점들에 대해서도 폭넓게 다룬다. 사형을 선고해야 하는가, 소년범과 가정폭력, 부정선거, 자살 후의 법률적 문제, 술로 인한 범죄와 감형 등이다.
억울함의 실체가 궁금한 이들, 법률가들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방식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청년 법률가에게는 법의 논리와 가치를 이해하고 법적 쟁점을 여러 측면에서 고찰해볼 기회가 되고, 세상이 왜 내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는지 자꾸만 억울하고 화가 나는 이들에게는 작은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억울함을 보는 시선>에서는 억울함의 사전적 정의와 정서적 특성에 대해 알아본다.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억울함의 의미, 법률가와 심리학자, 정신의학자는 각기 억울함의 어떤 측면을 중시하고 그 차이점은 무엇인지, 한국인들이 유난히 억울함을 호소하고 한국 사회에서 억울함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지, 억울함이 구제되고 치유되지 못하면 개인적?사회적으로 어떠한 병리현상이 나타나는지를 살펴본다.
<2장 과연 억울한가?>에서는 개인의 억울함이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공감받기 위한 전제 요건인 억울한 상황인지 아닌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알아본다. 가치관이 혼재된 사회에서 견해의 대립과 입장의 차이는 어떻게 다룰 것인지, 죄에 대한 벌은 어느 정도의 범위 내에서 가해져야 하는지, 법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용인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알아본다.
<3장 사실과 다른 판결이 나는 이유>에서는 오판과 사실과 다른 판결의 차이에 대해 알아본다. 법관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는 오판과 국가가 양보하고 사회가 수용해야 하는 실체적 진실과 다른 판결의 본질적 차이는 무엇인지, 사실과 다른 판결로 인해 발생하는 억울함은 어떻게 해결하고 최소화할 것인지에 대해 다룬다.
<4장 거짓과 오해>에서는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거짓말이거나 법률문제나 발생한 사실을 오해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에 대해 알아본다. 거짓말을 하거나 사건을 오해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 기저에 깔린 심리는 무엇인지, 법관은 실제 재판에서 거짓과 오해를 어떻게 밝혀내고, 그 판단의 정당성을 어떤 식으로 논증하고 설득하는지 설명한다.
<5장 안타까움과 그 이면>에서는 법률가들이 공감하는 안타까운 사연은 어떤 것인지, 사람의 배경과 사건의 동기는 재판의 결론에 어느 정도의 작용을 하는지, 구제받을 수 있는 억울함과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늘지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법률적 정의는 과연 양립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6장 억울함의 구제와 극복>에서는 억울함을 구제받기 위해 당사자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객관적으로 억울한 상황인지 아닌지 그 여부를 판단하는 권력을 가진 자의 바람직한 모습은 어떤 것인지,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법률가들의 실력과 올바른 태도는 무엇이고 그 시대의 보편적 상식에 충실한 것만으로 극복될 수 없는 억울함은 무엇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억울함이 없는 사회와 국가를 만들기 위해 그 구성원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아본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1년 판사로 임용되었다. 각 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거쳐 현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부장판사로 근무하고 있다.
저자소개
머리말
1장 억울함을 보는 시선
2장 과연 억울한가?
3장 사실과 다른 판결이 나는 이유
4장 거짓과 오해
5장 안타까움과 그 이면
6장 억울함의 구제와 극복
에필로그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