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 Sentimental Travel
청춘의 뒤안길에서 포착한 삶의 비경, 그 속에서 잊었던 나를 깨우다.
누구나 그러하듯 그 역시 이십대 후반과 삼십대의 청춘을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리고 그 질주의 에너지는 순정한 치기와 오기였으니, 뒤통수에 대고 누군가가 발사한 총알도 따돌릴 수 있을 것 같은 배포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저열한 세상을 향해 갑옷처럼 딱딱한 등을 낮추어 포복자세 갖추기를 잊지 않았다. 세상으로부터 아무리 공격당해도 상처받지 않으리라 다짐했으며,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서 시를 향한 열정과 꿈은 가슴 한켠에 잠시 접어둔 채 유예된 시간들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다행히 그의 곁으로 운명처럼 카메라가 다가왔다. 또한 업으로 삼은 여행의 길들이 펼쳐졌다. 그때부터 시를 쓰지 못하는 대신에 찍어야 했던 사진이 오히려 시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고,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광들이 얼어붙었던 그의 마음을 무장해제했다. 치열한 생존의 현장과 홀연한 여행의 길을 넘나들며 시간은 울둘목의 세찬 물살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신비로운 뷰파인더 속의 세상을 길어 올리며 어느덧 삼십대의 중반을 넘어선 그가 문득 고개를 들어 돌아보니 삶은 예전의 시끌벅적하고 악다구니 같은 전장만은 아니었다. 외로운 나비의 날갯짓처럼, 광활한 폐사지의 무너진 석탑처럼 우리네 삶은 그토록 적막하고 쓸쓸할 수가 없었다. 오랜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낡은 사진첩을 들추고 흘러간 유행가를 들으며, 떠나간 옛사랑의 기억을 더듬어보듯이 때로 인생은 간결한 그 무엇, 추억과 슬픔의 입자로 이루어진 피사체와도 같았다. 그리고 매일같이 귀를 따갑게 울리는 현실의 자명종이 깨우지 못한 것은 온전한 나를 위한 시간, 내가 스스로를 깊이 바라볼 시간이었다. 이 책에는 우리가 세파라고 지칭하는 그 모든 것들의 틈바구니에서 포착해 낸 삶의 비경과, 그 사이로 잠시 잊고 있었던 추억과 꿈을 반추하는 글들이 담담하게 흐르고 있다. 10여 년간 그가 찾아 헤매던 아름다운 찰나의 순간들, 고독의 절정, 빛과 그림자 속에 스며 있던 시어들이 드디어 몸체를 갖게 되는 순간인 것이다.
1973년 경남 김해 출생이다.
국문학을 전공했고, 1997년 「문학동네」에 시 ‘밀물여인숙’이 당선되면서 등단했으며, 시집 『단 한번의 사랑』을 펴냈다.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오랫동안 여행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여행작가로 일하며 자유롭게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에세이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구름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 『목요일의 루앙프라방』을 펴냈다. 3년 전 친구와 쟈칼 텐트와 버너 하나 들고 캠핑을 떠난 뒤 캠핑의 매력에 흠뻑 빠져 지금은 일년의 반을 텐트 속에서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