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앞
우리 안의 마음속 허기를 눈 밝게 알아보는 작가 이혜경의 첫 소설집 『그 집 앞』이 재출간되었다. 1982년 등단 후, 긴 공백기를 지나 (그 직전 첫 장편 『길 위의 집』(1995)이 출간되긴 했으나) 첫 소설집이 나온 것은 1998년. 그로부터 다시 14년이 지나 다시 만나는 『그 집 앞』. 신작 소설집 『너 없는 그 자리』와 마침 때를 맞추어 출간된 첫 소설집은 작가의 더운 마음자리와 그 깊이를 새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그의 소설들은 함부로 입을 열지 않고, 슬픔을 과장하지 않고, 부러 상처를 헤집어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아주고 더듬어줄 뿐이다. 때문에 단정하게 정리된 그의 문장들 앞에서는, 더불어 말을 아끼게 된다. 그저 마음을 어루만지고, 천천히 숨을 고르고, 내 안의 상처와 그리고 나아가 ‘너’의 상처도 들여다보게 하는 일. 그것은 그의 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힘일 것이다. 14년, 긴 시간을 지나 다시 들춰보는 그의 소설의 힘은, 그 시간의 힘으로 절로 더 단단해져 있는 듯 보인다. 혼자여서 때로 오히려 편안한 집. 그 집이 여기에 있다.
이혜경의 소설이 지니고 있는 슬픔의 힘은 그녀의 소설을 이끄는 순정성의 미학에서 비롯한다. 요컨대 그녀의 소설에서 배어나오는 슬픔은 그녀의 소설이 지나치게 착하다는 점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늘진 삶의 구석구석을 애정어린 시선과 정교한 필치로 형상화해온 대표적인 여성작가인 그녀는 더디지만 탄탄하고 뚜렷한 행보를 걸어왔다.
1960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으며,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세계의 문학>에 중편소설 『우리들의 떨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혜경의 소설은 가족을 둘러싼 내력을 작중화자의 자전적 회고를 통해 서술하는 가운데 슬픔과 절망의 서정을 체념이나 화해로 이끌어간다. 현재시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대개 과거의 사건들을 보고하게 하거나 자아와 세계에 대한 반성을 촉발시키는 계기로 작동하고 있다. 이혜경의 소설에서 회상되는 사건들은 현란하거나 새롭기보다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그런 만큼 과거를 회상하는 시선의 성격과 회상의 현재적 효과에 큰 비중이 주어진다.
1995년 장편소설 『길 위의 집』으로 오늘의 작가상과 독일 리베라투르 장려상을 받았으며 『피아간』으로 13회 이수문학상을, 『틈새』로 2006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그 집 앞』『꽃그늘 아래』등이 있다.
그늘바람꽃
그 집 앞
어스름녘
가을빛
귀로歸路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떠나가는 배
젖은 골짜기
우리들의 떨켜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