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
슬프지만 꼭 아프지만은 않은 ‘아픔의 별’ 여행
저마다 그리움의 장소가 있고 저마다 그리움의 시간이 있다
바람결에 상처를 드러내고 함께 보듬는 카페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뾰족하니 아픈 사연들, 가슴에 묻힌 슬픔의 조각들이 ‘이야기 시’로 연결되다
나무의 꽃, 잎, 열매, 가지, 뿌리처럼 인간에게도 각자의 가치와 역할이 있다
장편소설 『키 작은 코스모스』의 베스트셀러 작가 노은이 『이등병 엄마의 보낸편지함』 이후 10년 만에 발표한 ‘이야기 시’이다.
열일곱 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가슴에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 만나 우정을 나누는 스토리가 있는 시로, 엄마가 그리운 딸 카페 리더 ‘엔젤’, 아들을 그리워하는 엄마 ‘민들레’, 남편이 그리운 아내 ‘방울방울눈물’, 동생이 그리운 언니 ‘스피카’, 아버지가 그리운 딸 ‘두루미’ 등의 멤버 다섯이 등장한다. 이들은 언젠가 한 번씩은 스쳐 지나갔던 관계들로, 서로에게 머뭇머뭇 다가서며 아픔과 우정을 나누다가 한걸음씩 서로를 알아가며 인연을 엮어 나가기 시작한다.
혼자보단 둘이 낫고 둘보단 여럿이 낫지만, 그래도 지워버릴 수 없는 건 각자의 아픔과 슬픔이라는 것을 그리고 아픔을 적당히 나눌 수는 없다는 것을 작가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작가는 저마다의 가슴 안에 망울져 맺힌 아픔과 슬픔과 그리움의 사연들을 조각조각 곱게 모아 어루만지기를 멈추지 않는다. 슬픔과 그 이웃의 슬픔은 친구처럼 서로를 알아보고, 슬픔은 그 이웃의 슬픔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 시는 알게 해 준다.
어디에나 있고 또 어디에도 없는 우리들의 ‘너’를 만나고 싶은 순간들
그리움은 늘 창밖을 서성이고, 아픔은 습관처럼 사람들의 안을 기웃거린다. 저마다 아픔의 시간이 있고 아픔의 그림자가 있다. 차마 건네지 못한 채 가슴에 곱게 묻은 말 한마디가 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가슴에 아픔의 별 하나를 품고 살게 된다.
그리움을 머리카락처럼 잘라 내 버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슴에 꽃보다 진한 아픔을 지닌 이들은 안다. 아픔을 버릴 수는 없지만 그 짙푸른 그리움이 때로는 힘이 된다는 것, 애틋함의 깊이만큼 위로가 된다는 것을. 또 그 찬란한 슬픔은 뾰족하여 끌어안으면 아프지만,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활짝 핀 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은 모든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라고, 작가는 나지막히 말한다. 살다 보면 거센 폭풍도 만나고 빗줄기와 눈보라도 만날 테지만, 그렇게 흘러가다가 만난 슬프고 아픈 이웃들에게 마음 기대어도 보고 슬며시 손을 잡아도 보고 또 때로는 무심히 외면하기도 하면서 살아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슬픔은 잔잔하고 담담하게 별빛, 꽃, 햇살, 바람, 물, 함박눈, 눈송이 같은 자연에 이입되어 우리를 감싸고 숙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봄날의 새순으로 피어나 초록여름으로 무성해지다가 가을단풍으로 물들어 겨울나무로 깊어지듯이, 우리들도 그저 어디쯤에서 만나고 헤어지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자연의 때와 같은 순리를 받아들이고 나면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고,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고, 손 대신 마음을 잡으며 인생이라는 낯선 여행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안다는 것이 꼭 행복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는 만큼 보이나니
어리고 철없을 때는 그저 보이는 대로 믿고 눈에 보이는 만큼만 바라고 생각하지만, 눈에 보이는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훨씬 크고 넓고 무겁다는 걸 알게 되면 인생의 관점이 바뀌고 겸손해진다. 결국에는 견디지 못할 고통까지도 고개 끄덕이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철이 든다는 건 부족함과 애틋함과 안타까움마저도 두 팔 벌려 소중히 받아 안는 것이다. 그 슬픔을 이겨내고 밀어내고 견뎌내기 위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가, 결국에는 마음 기대며 함께 가는 친구가 된다.
누군가가 그리고 무언가가 나에게 오고 가는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없듯, 아픔과 슬픔도 웃고 울며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말없이 떠나가 버린다. 손 내밀어 잡을 수 없다 해도 늘 연결되어 있는 생의 신비를 우리는 그저 받아들이며 살아나가야만 한다. 아련한 그리움의 장소를 기억하고 그리움의 시간을 되살리는 건 각자의 몫이다.
그리운 마음을 갖는다는 건 이미 화해를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작가는 말한다. 고통이 잊히는 만큼 추억이 나긋나긋 깊어 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차마 지울 수 없는 귀한 것들을 가슴 깊이 간직할 수 있게 된다. 가슴 깊이 얼룩진 아물지 않는 아픔과 아릿한 슬픔, 혼자 견뎌야 하는 그리움들. 그 사랑, 아픔, 그리움을 무르익히면 슬픔과 그 이웃의 슬픔은 친구처럼 서로를 알아보고 슬픔은 그 이웃의 슬픔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이해 속에서 ‘방울방울눈물’이 ‘보송보송미소’로 변하고, ‘민들레’가 ‘메이플 시럽’으로 변하고 ‘스피카’가 ‘개밥바라기별’로 변하고 ‘두루미’가 ‘콩나물시루’로 변하고 ‘엔젤’이 ‘에스텔’로 변화하여 가는 과정이 받아들여진다. 바람처럼 쓸쓸하고 빗방울처럼 후두둑 가슴을 적시는 ‘슬픔’이 또한 바람처럼 살뜰하고 빗방울처럼 싱그럽기도 하다는 것, 슬픔은 우릴 울게 하지만 슬픔이 때론 우릴 웃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송송 구멍 많은 돌담으로 살 수 있다면 슬픔도 아름답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순간과 순간이 만나 함께 흘러간다. 제자리에 머무르거나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버티고 견디면서 끊임없이 흘러간다. 인간의 슬픔도 그러하다.
절실한 순간들이 방울방울 모여 그리움 되고 애틋한 걸음걸음 하나둘 모여 길이 되듯, 사람과 사람이 모여 아름다운 만남이 되고 반짝이는 슬픔이 모여 눈부신 별무리를 이룬다. 그 만남이 역사이다. 한 개인의 역사, 한 나라의 역사, 거대한 인류의 역사 모두 한순간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그 만남의 역사에서 누구는 잎이 되고, 누구는 줄기가 되고, 뿌리가 되고 열매가 된다. 꽃이 되는 누군가는 아주 작은 숫자에 불과하다.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인연과 각자의 역할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이제부터 송송 구멍 많은 돌담이 되어 보면 어떻겠느냐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운 바람도 송송 지나고, 슬픔의 바람도 묵묵히 지나고, 아픔의 바람도 거침없이 넘나드는 섬마을 돌담처럼 흔들리고 부대끼더라도 넘어지거나 무너지지 않는 돌담 하나 마음 안에 쌓아 보면 어떻겠느냐고 우리를 슬며시 이끈다.
오고 가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나게 된다는 기적을 믿으며 살아간다면, 길모퉁이 모퉁이마다 새로운 만남이 우리를 기다리며 낯선 여행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정답은 아닐지라도 해답 비슷한 별 하나를 찾아내고 나면 그리운 사람을 만나 차마 하지 못한 말을 비로소 전할 수 있을 거라고 작가는 우리를 위로한다. 그것이 인생임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1979년 『키 작은 코스모스』로 데뷔. 『키 작은 코스모스』 『노란 비옷』 『이슬비』 『실연』 『나팔수선화』 『물망초』 『기억의 상처』 『너는 나를 사랑하게 될 거야』 등의 장편소설과 『이제 이별입니다』 『분홍신 신고 날으리』 『이등병 엄마의 보낸편지함』 등의 시집이 있다.
시작 메모
아픔의 별 하나
아픔의 별 둘
아픔의 별 셋
아픔의 별 넷
아픔의 별 다섯
아픔의 별 여섯
아픔의 별 일곱
아픔의 별 여덟
아픔의 별 아홉
아픔의 별 열
아픔의 별 열하나
아픔의 별 열둘
아픔의 별 열셋
아픔의 별 열넷
아픔의 별 열다섯
아픔의 별 열여섯
아픔의 별 열일곱